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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거든 - 노는 재미로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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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거든 - 노는 재미로 산다고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네타냐후와 트럼프는 전쟁하는 재미로 사는 정치인들입니다. 그야말로 싸움닭들입니다. 공정이나 대의는 기대하기 힘들고, 그냥 자기 논리만 있고, 자기 논리에 거스르는 사람들은 전부 나쁜 놈이고 죽일 놈입니다. 사이코 살인범도 혀를 내두르고 손털고 돌아설 인간들입니다.  그러면 권력도 없고, 마음대로 휘두를 군대도 없는 나같은 한심한 인간들은 무슨 재미로 사나?  트럼프는 벌었다하면 한 방에 수억을 벌고, 수억을 탈세도 한다는데, 나같은 인간은 일당 벌려고 헥헥거리며 종일 진땀을 흘려야 하고, 그렇게 일해봐야 벼룩이 간 빼먹듯 연방정부에서 주정부에서 세금을 엉덩짝 고기 쑥덕 잘라 떼어가듯 징발해가 버립니다. 남은 돈으로 어떻게든 연명해 살아야 하는 인생은 무슨 재미로 사나? 몸에 붙은 살 다 떼어먹히고 근육 얼마 남지 않은 뼈마디 휘청거리며 언제까지나 버티고 살 수 있을까? 죽어라 일한 다음에는 죽어라 빨리 정리하고 퇴근하여 세상에서 나 하나 바라보고 매일 데이트하고 싶어하는 아내 만나 매일 노는 재미로 사는 것이 개미 인생이 겨우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햇볕 아래 아내와 데이트하는 순간 만큼은 수억 버는 트럼프가 하나도 부럽지 않은 순간입니다. 오늘 글의 제목이 뭔가 어디선가 언젠가 들어본 소리인 것 같은 화두지요? “왜 사느냐고 묻거든” 민주화 운동가 시인 박노해의 시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독재 정권에 잡혀 투옥되어 옥중에서 지은 시입니다. “왜 사느냐고 묻거든 - 나는 웃음 소리 멈추고 - 그냥 산다고 하겠소” 요즘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화되지 못한 사람들의 마...

내가 살았던 구로동 - 1970년대 초반 이야기


내가 살았던 구로동 - 1970년대 초반 이야기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지금 2017 8, 입추도 지나고 8월도 말로 치닫는 이즈음, 아침저녁으론 싸늘함마저 느껴집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새벽같이 깨었습니다. 그리고 구글 지도로 1970년 초 즈음으로 날아가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 그때가 생각난 이유가 뭘까요? 어제밤 꿈자리가 뒤숭숭했습니다. 꿈에 나타난 집, 제가 살아봤던 구조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거실 지붕이 너덜거리고 그리고 비가 들이치는 개꿈을 꿨습니다.

 

그런 꿈 덕분이었을까요? 1970년 초, 구로동에 살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길은 넓었지만, 차들은 거의 없어서 거의 도로 한복판까지 노점상들이 길을 차지하고 있어도 오가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그걸 단속하는 사람도 없었고, 당연히 서로 자기나름대로의 모습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구글 지도를 보니, 그 때 있던 라디오 전파상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약국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고물상의 모습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구글지도에 표시되는 구로시장과 제가 졸업한 구로남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위치를 기준으로 추정해본, 제가 그때 살던 집의 위치는 대략 아래 지도에 빨간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살던 집이 우리 부모님의 집이 아니고 세든 집이었습니다. 방 두 개가 붙어있는 조그만 집에서 부모님과 삼남매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비가 오면 도배지를 바른 천정이 젖고 물의 무게에 축처져 바로 물폭탄이 떨어질 것 같은 그런 공포를 느끼며 살았습니다. 화장실은 밖으로 나가 골목으로 들어서면 나무문으로 가려진 똥간을 화장실로 여러가구가 같이 사용했습니다. 똥간에 들어서면 항상 똥이 넘쳐나 똥을 밟지 않고 피해가며 정말 잘 싸야 했습니다. 그렇게 구차한 삶이 있었던 곳입니다.

 

구로남 국민학교를 졸업하고는 강서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강서중학교를 찾아보니, 그 이름은 없어지고, 세일중학교로 바뀌어 있군요, 더구나 강서중학교는 사내녀석들만 다니던 중학교였는데, 세일은 남녀공학이 되었습니다. 강서중학교 길 건너에는 삼립빵 공장이 있었습니다. 해서 늘 구수한 빵냄새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허허벌판에 삼립빵 공장과 강서중학교만 있었지 정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학교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논두렁에서 벼메뚜기도 잡고 개구리도 잡으며 놀던 기억이 납니다. 구글 지도로 보니, 강서중학교에서 집까지는 꼬불꼬불 2km 정도 될 것같은데, 그게 지금은 별 것 아니지만, 꼬맹이에게는 얼마나 긴 거리였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길을 오가면 다리가 굵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난했어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 클 때까지 부모님이 같이 살아계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질적으론 늘 가난했어도,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가 그 무엇보다고 큰 금은보화, 보물이었습니다. 부모님 품 안에서 천방지축 세상 모르던 철부지가 어떻게하다보니 한국을 떠나 먼 밴쿠버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 시절 없었던 것들.

 

그 시절엔 TV, 컴퓨터, 스마트 폰이 없었습니다. 집에 냉장고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해서 학교 파하고 집에 오면 하는 짓이 꼬맹이 들이 골목에 모여 구슬치기, 잣치기, 비석치기, 다방구 하며 해지는 줄 모르고 노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그 시절 있었던 것들.

 

TV가 있는 집이 간혹 있었습니다. 그런 TV있는 집에 저녁 시간이 되면 꼬맹이들이 모여 만화영화를 봤습니다. 그때 본 만화영화 제목, 기억나는 것들, 마린보이, 황금박쥐, 요괴인간, 뭐 그런 것들입니다. 당연히 브라운관 TV였고, 흑백 화면이었습니다. 밴쿠버에 온 것이 2002년인데, 그때까지도 아직 평면TV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급변하는 시대에 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미흡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신 성의와 시간 내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밴쿠버의 시원한 바람처럼 기분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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