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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여름 웨스트 밴쿠버 하모니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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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여름 웨스트 밴쿠버 하모니 축제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어느 나라든 크고 작은 도시에서는 여름이면 축제가 벌어집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인 밴쿠버 역시 여름이면 여기 저기 커뮤니티마다 여러 종류의 타이틀을 내걸고 축제가 열립니다. 브라질 같은 경우, 대단하게 치장하고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제법 축제다운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웨스트밴쿠버 앰블사이드 비치 파크에 판 깔아놓는 하모니 축제라는 것은 스페인같이 소를 풀어놓거나 리오의 축제같이 퍼레이드가 있는 것도 아닌 그냥 그야말로 소박한 로컬, 동네 축제입니다.  말이 축제지, 아티잔(artisan)이라는 사람들이 만든 각종 공예물을 포함한 얄궂은 물건 내다파는 부스들과 푸드 트럭 그리고 술 한잔 놓고 밴드 공연을 볼 수 있는 그 정도를 축제라고 매년 펼치고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 하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열심히 축제라고 하여 물건 가져와 장사를 하고 있는데 미안하게도 구경만 하고 산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푸드 트럭에 팔아준 것도 없습니다. 보니 푸드 트럭 중에 장사가 제일 잘 되는 것은 아이스크림 부스입니다. 바닷가 잔디 위에 마련된 공연장에는 간이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들어가는데 마치 표 검색하는 것같은 모습을 하고 가방을 열게 하고 들여다보는 일까지 하고 있는데, 그건 표 검색을 하는 것은 아니고 무료입장이긴 한데, 술이나 음료를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공연을 보려면 뭐 들고 들어와서 마시지 말고 안쪽에서 파는 음료나 술을 사마시라는 이야기입니다. 부스마다 전시한 색다른 모양의 상품에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북적거리는 사람...

내가 살았던 구로동 - 1970년대 초반 이야기


내가 살았던 구로동 - 1970년대 초반 이야기

*This blog post wa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지금 2017 8, 입추도 지나고 8월도 말로 치닫는 이즈음, 아침저녁으론 싸늘함마저 느껴집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새벽같이 깨었습니다. 그리고 구글 지도로 1970년 초 즈음으로 날아가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 그때가 생각난 이유가 뭘까요? 어제밤 꿈자리가 뒤숭숭했습니다. 꿈에 나타난 집, 제가 살아봤던 구조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거실 지붕이 너덜거리고 그리고 비가 들이치는 개꿈을 꿨습니다.

 

그런 꿈 덕분이었을까요? 1970년 초, 구로동에 살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길은 넓었지만, 차들은 거의 없어서 거의 도로 한복판까지 노점상들이 길을 차지하고 있어도 오가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그걸 단속하는 사람도 없었고, 당연히 서로 자기나름대로의 모습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구글 지도를 보니, 그 때 있던 라디오 전파상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약국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고물상의 모습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구글지도에 표시되는 구로시장과 제가 졸업한 구로남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위치를 기준으로 추정해본, 제가 그때 살던 집의 위치는 대략 아래 지도에 빨간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살던 집이 우리 부모님의 집이 아니고 세든 집이었습니다. 방 두 개가 붙어있는 조그만 집에서 부모님과 삼남매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비가 오면 도배지를 바른 천정이 젖고 물의 무게에 축처져 바로 물폭탄이 떨어질 것 같은 그런 공포를 느끼며 살았습니다. 화장실은 밖으로 나가 골목으로 들어서면 나무문으로 가려진 똥간을 화장실로 여러가구가 같이 사용했습니다. 똥간에 들어서면 항상 똥이 넘쳐나 똥을 밟지 않고 피해가며 정말 잘 싸야 했습니다. 그렇게 구차한 삶이 있었던 곳입니다.

 

구로남 국민학교를 졸업하고는 강서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강서중학교를 찾아보니, 그 이름은 없어지고, 세일중학교로 바뀌어 있군요, 더구나 강서중학교는 사내녀석들만 다니던 중학교였는데, 세일은 남녀공학이 되었습니다. 강서중학교 길 건너에는 삼립빵 공장이 있었습니다. 해서 늘 구수한 빵냄새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허허벌판에 삼립빵 공장과 강서중학교만 있었지 정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학교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논두렁에서 벼메뚜기도 잡고 개구리도 잡으며 놀던 기억이 납니다. 구글 지도로 보니, 강서중학교에서 집까지는 꼬불꼬불 2km 정도 될 것같은데, 그게 지금은 별 것 아니지만, 꼬맹이에게는 얼마나 긴 거리였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길을 오가면 다리가 굵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난했어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 클 때까지 부모님이 같이 살아계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질적으론 늘 가난했어도,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가 그 무엇보다고 큰 금은보화, 보물이었습니다. 부모님 품 안에서 천방지축 세상 모르던 철부지가 어떻게하다보니 한국을 떠나 먼 밴쿠버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 시절 없었던 것들.

 

그 시절엔 TV, 컴퓨터, 스마트 폰이 없었습니다. 집에 냉장고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해서 학교 파하고 집에 오면 하는 짓이 꼬맹이 들이 골목에 모여 구슬치기, 잣치기, 비석치기, 다방구 하며 해지는 줄 모르고 노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그 시절 있었던 것들.

 

TV가 있는 집이 간혹 있었습니다. 그런 TV있는 집에 저녁 시간이 되면 꼬맹이들이 모여 만화영화를 봤습니다. 그때 본 만화영화 제목, 기억나는 것들, 마린보이, 황금박쥐, 요괴인간, 뭐 그런 것들입니다. 당연히 브라운관 TV였고, 흑백 화면이었습니다. 밴쿠버에 온 것이 2002년인데, 그때까지도 아직 평면TV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급변하는 시대에 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미흡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신 성의와 시간 내어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밴쿠버의 시원한 바람처럼 기분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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