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파운드의 비밀


3파운드의 비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뭔가요? 단순히 뭘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일뿐일까요?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뭘 좀 알면 그 분야의 전문가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뭣에 대해 상식적으로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그 분야의 기본을 우선 차곡차곡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기본적인 머리 지식과 손경험을 쌓아가야 합니다. 그런 기본 학습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은 관련된 기술이나 지식을 가르쳐주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전문가로 가는 기초과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로 가는 기초과정 학습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그 후에 일을 통해 혹은 더 심화된 연구과정을 통해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자동차 공장(혹은 연구소)의 예를 들면, 대학을 졸업했다고 자동차를 뚝딱 디자인하고, 설계하여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공대를 졸업하고 자동차 공장에 햇병아리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어리버리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군대 이등병같은 고문관에 불과할뿐입니다.

 

선배 사원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배당된 직무의 선배가 하는 일을 어깨너머 보고 배우면서 하나하나 깨우쳐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년 열심히 어울려 생활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전문가의 한 반열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입니다.

 

자동차 공장에, 연구소에 여러 보직이 있지만 만약에 서스펜션을 설계하는 자리에 있다면 어떤 일을 할 때 전문가다운 카리스마가 느껴질까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그냥 입만 가지고 자동차 한 대를 통째로 만들 수 있지만 전문가는 공장 현장에서 실물로 생산할 수 있는 도면을 그려 내야 합니다. 모양을 그려내야 하고, 두께와 길이를 결정해야 합니다. 재료를 선정해야 하고, 강도와 내구력도 계산을 해내든지, 시험을 해봐야 힙니다. 생각과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킬 때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정성적인 측면과 정량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아이디어를 낼 때는 총론적인 이야기도 좋지만, 뭔가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각론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각설하고, 엔지니어들은 모양과 구조를 그려내느라 머리를 싸잡아매지만, 두께와 양을 결정해야 할 단계에 가면 거의 돌아가실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게됩니다. 설계자가 잘못 결정한 엔지니어링 때문에 수십만대의 리콜이 터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 스트레스 때문에 40대에 돌연사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전문가, 쉽지 않겠지요? 쉽지 않은 결정을 정확하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전문가입니다. 그 대목에서 전문가의 카리스마가 보이고 멋져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능력은 일을 통해서, 시간과 노력을 통해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서 쌓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고치는 정비에 있어서는 어떨까요? 직업에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는 북미에서조차 미캐닉으로 천시받는 정비공이니 그 하는 일에 전문가라는 사치스러운 딱지를 붙여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있습니다!

 

정비부문에서 정비공이 양을 결정해야 하는 경우는 어떤 것일까요? 정비공이 양을 결정해야 하는 대상은 설계 엔지니어들이 다루는 것과는 좀 다른 것입니다. 양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정량적인 성격의 일은 맞지만, 계산적인 것보다는 경험적인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살 때, 어린 시절, 소방서를 지날 때, 인상 깊게 본 것이 있습니다. 소방서 벽에 붙여진닦고, 조이고 , 기름치자”라는 슬로건입니다. 참 단순무식한 말인 것 같긴 하지만 그게 정비공에게도 같이 통하는 진리입니다. 뭘 풀고, 조일 때, 엔지니어가 결정한 토크 스팩(torque spec)대로 정비공은 따라가면 되지만, 스팩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조이는 것은 스팩이 있지만 푸는 것은 스팩이 없습니다. 녹슬어 쩔어붙은 볼트나 너트를 푸는데, 스팩이 따로 없습니다. 페니트레이팅(penetrating) 오일만 뿌리면 풀릴지 아니면 불을 대야할지는 엔지니어가 아닌, 정비공이 스스로 스팩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경험이 일천한 정비공이 흔히 만드는 실수는 뭘 망가뜨리고 부러뜨리는 일입니다. 양에 대한 개념과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만큼의 토크를 가해야 할지, 어느 이상의 토크는 가하면 안되는 것인지를 잘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뭘 부러뜨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노련한 정비공은 뭘 부러뜨리지 않고, 샤방샤방 느리게 움직이는듯 하지만 정학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합니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각론에 강하고 정량적으로 정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에서 자동차 엔지니어로 18년 일하고 캐나다에 와서 정비공으로 변신하여 15년 일을 했습니다. 그 정도면 자동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력이 날만도 하고, 하산할만할텐데도, 재주가 메주인지? 아직도 모르는 게 많고 미숙한 것이 여전히 있습니다. 얼마 전에 드라이브 샤프트를 분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또 깨우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드라이브 샤프트를 바이스에 물리고 분리시키기 위해서 쳐대기 시작하는데, 그게 잘 움직여주질 않습니다. 그걸 옆의 존이 보고 있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자기의 공구통을 열더니, 큰 망치를 가지고 옵니다. 그걸로 두어번 치니, 꼼짝 않던 놈이 툭하고 분리되어 나옵니다.

 

조그만 망치를 가지고 세게 치면 된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무심하고 무식하게 일을 했는데, 큰 해머로 치니, 조그만 해머로 되지 않던 일이 너무나 손쉽게 됩니다. 공구를 정량적으로 정확하게 선택하는 것도 정비공의 전문성을 나타내줍니다. 망치가 크기별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존의 공구통을 보면서 10년 넘는 세월을 제가 망치에 대해 너무 소홀하게 생각했구나 하는 깊은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때늦게 망치에 그렇게 꼽히니, 공구점에 가서 망치를 세밀하게 체크하게 됩니다. 그동안 제게는 적당한 크기의 망치 하나와 대형 망치 그리고 몇개의 플라스틱 망치 정도가 있었는데, 무게 별로 몇 개의 망치가 필요한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프린세스 오토에 가서보니, 마침 망치를 세일하고 있습니다. 망치들이 진열된 곳에 3파운드짜리 망치가 절품되고 없습니다. 20불 넘는 망치가 9불에 세일이 되고 있어 잘 팔려나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망치들은 좀 남아 있는데, 3파운드 망치만 몽땅 팔려나간 것일까요? 3파운드짜리 망치가 없어서 옆에 있는 할인 판매하는 4파운드짜리 망치를 하나 샀습니다. 4파운드짜리 망치를 사용해보니, 3파운드 짜리 망치가 먼저 다 팔려나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4파운드가 무거운 것은 좋은데, 이게 맘대로 콘트롤되지 않습니다. 이걸 마구 쉽게 휘두르기에는 손목에 너무 무리가 옵니다. 한손으로 맘대로 다루기에는 좀 버거운 무게입니다.

 
  

그 뒤에 홈디파에 가 3파운드 망치를 만져보았습니다. 이건 제 손목이 감당할 수 있을만 합니다. 보통 남자가 손목에 큰 무리없이 맘대로 좀 휘둘러 댈 수 있는 최대 무게가 3파운드였습니다.

 

브레이크 작업을 할 때, 3파운드 망치를 사용해보니, 일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쩔어붙은 로터를 떼어내기 위하여 조그만 망치에 속도를 붙여 냅다 쳐낼 필요없이 3파운드 망치를 들고 그냥 툭 한번 치니 로터가 싱겁게 그림같이 분리되어 나옵니다. 그야말로 생긴 것도 못생긴 이 단순무식한 망치에도 이런 정량적인 전문가 포스가 숨어있는데,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전문성이 존재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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