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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속에서 꽃 피운 미국 팝음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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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속에서 꽃 피운 미국 팝음악의 역사 *This blog post is written in Korean. To view it in English, you can use a translation app or select your web browser's translation option to view it in English. 블루스 블루스라고 하면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 회식자리에서 남자들끼리 손잡고(여자가 없으니) 마치 게이들이 춤추듯 흐느적거리며 추던 춤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블루스라는 말은 미국 대중음악의 기원을 뜻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잡혀와 뉴올리언즈의 목화밭에서 일하면서 클래식 기타에 리듬을 실어 고난과 고통의 시름을 달랬던 음악이 블루스의 시작이었습니다. 반면 아일랜드등 유럽에서 미국의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이주하여 마운틴 음악을 만든 백인들이 컨츄리 음악의 효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남부의 흑인들이 대규모로 시카고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음악의 역사는 다양하게 분화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재즈와 리듬 앤 블루스로 분화되기 시작합니다.  재즈 먼저 재즈의 역사를 살펴보면 경제 대공황을 전후하여 열 명 이상의 대규모 재즈 밴드가 정해진 리듬을 연주하는 스윙 계열의 재즈가 있고, 이에 대항하여(흑인 밴드에 지휘자는 백인) 흑인들만의 즉흥 연주와 기교를 자랑하는 비밥으로 나뉘어져 발전합니다. 리듬 앤 블루스 그리고 다른 한 줄기 리듬앤블루스(R&B). 남부의 클래식 기타 대신 도심의 소음에 대항하여 큰 소리를 내기 위하여 일렉기타(Electric Guitar)가 등장하고 강한 리듬이 더해지면서 블루스가 리듬앤블루스로 분화하게 됩니다. 재즈가 연주에 촛점을 맞춘 음악이라면 블루스는 리듬과 목소리에 비중을 둔 음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리듬앤블루스에 흑인 특유의 스토리가 들어간 음악이 소울이고, 비트를 더 잘게 나눈 것이 펑크입니다.  블루스와 컨츄리 음악이 만나 록앤롤을 탄생시켰고, 흑인...

내일 또 봐요

내일 또 봐요

옆에서 일하는 백인 청년 에릭이 “See you tomorrow”를 한국어로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봅니다. 그에 대한 답으로 “내일 또 봐요”라고 하니, 몇번 따라해보다가 종이에 적어 달라고 합니다.

‘헐! 이걸 어떻게 적어주지?’

“Neil TTo Vayo”라고 적어주면서 Neil은 tomorrow이고, TTo는 again이고, Vayo는 see라고 주석을 달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또” 발음을 하는데 난항을 겪습니다. 된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자꾸 바람 새는 소리 “토”만 나옵니다. 이상하다 싶어 tt를 dd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제야 그 버터 바른 입에서 “또” 소리가 나옵니다.

‘내가 잘못했네!’

버터 바른 입에서는 한글의 된 소리가 절대 나오지 못하는 건 줄 알았는데.

“Vayo”는 “봐요”라고 말할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그렇게 적어주면 “바요” 정도 말할 수 있을 거로 기대를 했고, 그렇게 이야기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봐요”라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맞아! 봐요”라고 제가 말하자마자 에릭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응? 바요?”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 봐요.” 에릭이 피곤한 표정으로 “V야? B야?”라고 묻습니다. 

제가 어떻게 다른가 묻자, 에릭이 “V는 봐, B는 바”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계속 “바”라고 했다는 겁니다. 봐를 영어하는 애보다 더 못하면서 봐를 소리내보라고 한 것입니다. 입을 옆으로 더 크게 열면서 봐라고 소리를 내보랍니다.

‘내가 또 잘못했네!’

죄인된 기분으로 그럼 Neil에 있는 e대신에 a를 넣으면 넌 어떻게 소리낼래 하고 물어보니 에릭이 a라면 입을 옆으로 더 늘리면서 “애~” 하면서 한국인의 귀에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냅니다. 그냥 neil이 한국어 내일에 가까운 소리가 납니다. 이거 하나 처음으로 잘 했네.

내가 한글이나 영어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인생 헛 산 기분.

그런데 이 시점에서 세종대왕이 다시 조명됩니다. 한글이 그 막강한(?) 영어에 대항해서도 이렇게 비슷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고, 배우기 쉬운 말을 만들어 낸 그 실력이. 다른 왕들에게는 붙여주지 않은 대왕 타이틀을 붙여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어에는 있고 한글에는 없는 소리, 한글에는 있고 영어에는 없는 소리, 그 차이가 의미없고, 생각보다 그렇게 큰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좀 더 노력하면 한국사람이 영어를 더 영어답게 말할 수 있고, 영어 쓰는 사람이 한글을 좀 더 한국사람같이 말 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저한테는 가망이 없는 이야기지만.

작은 해프닝을 겪고 난 후, 에릭은 “내일 또 봐요” 소리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아주 잘 냅니다. 어찌 되었든 성과가 난 것을 보면서 성경의 이런 말씀이 떠 오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이런 바보 코미디같은 헤프닝에 감히 말씀을 끼워붙일 일이 전혀  아니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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